스타트업 인턴

[DRIVE] 동기부여의 3가지 요인

지미닝 2024. 5. 23. 00:08

3부

이번 글은 아마 Drive에 대한 내용이라기보다 책을 읽으면서 최종적으로 느꼈던 감상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남길 것 같다.

 

 

다니엘 핑크

 

다니엘 핑크는 참고로 뉴웨이브 경제 잡지《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의 기고가 겸 편집위원으로, 몇 년간 미국 각지에 여러 단독업자, 임시직 초소형 사업자 수백 명과 그들의 삶의 노동에 관해 직접 인터뷰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최고의 미래학자고 꼽히며 비지니스 사상가로 불린다.

 

경영학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싱스커스 50Thinkers 50'이 2년마다 선정하는, 전 세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50인 중 한 명이다.

 

 

 

2부 동기부여의 3가지 요인

이번 글에서는 2부의 "동기부여의 3가지 요인"을 키워드로 감상을 서술해나갈 것이다.

그가 말한 3가지 요인에는 자율성, 숙련, 목적이 있다.

 

자율성, 자기주도적인 동기부여의 힘

 

인턴을 경험을 하면서 너무나 당황스러웠던건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보장해주었다는 점이다.

 

센디에 오기 전까지 나 자신에게도 자율성을 보장해준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자율성을 통제했고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욕구를 짓누르고 성공하기 위해 인내심을 길러와야만 했다. 그런 사람이 좋은 대학에 갔고, 원하는 직업을 얻을 기회가 더 많았다. 좋은 대학에 가는 친구들은 대체로 나 자신의 당장의 욕구를 누르고 인내심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팀프로젝트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토론과 같은 팀프로젝트를 할 때도, 우리 팀이 잘하기 위해서는 잘하는 한 명이 나머지 구성원을 통솔하고 제어하여 나머지 구성원은 그 한 명의 지시를 따르고 묵묵히 노력하는게 성취도에 높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실제로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대학에 오고 여러 분야(프론트엔드, 백엔드, 디자이너)와 모여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면서 사실상 우리가 사는 사회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누군가의 자율성을 통제하면서 모두가 팀으로서 각자의 역량을 펼친다는 것은 더없이 말이 안되는 이야기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시행착오를 겪었고 나의 무능으로 팀의 구성원들이 대립했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기도 했지만, 이번 경험을 거름삼아 더 나아가려고 한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알게된, 더 나은 팀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래와 같다.

  1. 자율성
  2. 공유된 목적성
  3. 서로간의 신뢰

팀원들은 각자 본인이 맡은 영역에 대해서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서로 스택간에 잦은 간섭과 신뢰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은 커뮤니케이션은 자율성을 현저히 떨어뜨리며 자율성이 떨어지면 심리적 안정감도 내려가고 그 사람이 해낼 수 있는 퍼포먼스의 1/3이상이 손상된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나 각자의 역량을 필요로 하는 팀프로젝트에서는 어느정도 개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서로 이를 인지하고 커뮤니케이션에 임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팀원 중 누구도 상대의 자율성을 빼앗을 권리도 없고 빼앗아서도 안된다. 아마 서로 공유된 목적성이 있다면, 이는 더 쉬워지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즐기며 좋은 포트폴리오를 남기고자 하는 목적성, 대학교 시절에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남기겠다는 목적성 등 우리에 자율성을 높이면서 단순히 프로젝트가 일이 아닌 더 나은 무언가로 느껴지기 위한 공유된 목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로간의 신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분야만큼은 그사람이 나보다 잘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믿는 것.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나온 아이디어 조차도 신뢰있는 아이디어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신뢰도 필요할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했는데, 회사는 어쩔 수 없이 이를 못지키지 않을까? 아무래도 여건이라는게 있을텐데 어떻게 이런 것들을 고려하고 경영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스타트업은 더 심할 것 같다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센디에 인턴으로 오고 CTO님께서 팀 문화를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교육하며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멋진 꿈을 펼치고 계시구나, 타 부트캠프 교육 시스템들은 정해진 커리큘럼, 정해진 FM에 맞추어 사람을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집중하는데 어떻게 사업을 하는 중에 이렇게 팀원들을 교육하면서도 좋은 퍼포먼스, 각 스프린트들을 에자일하게 진행시키는지 역량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팀장은 이런거구나, 좋은 교육자, 좋은 지도자는 이런 것이구나...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CTO/CPO는 그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새삼 무게가 많이 느껴지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숙련, 몰입에 이르는 길

 

나는 예전부터 이 구절을 좋아했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 숨결이 바람될 때

 

내가 좋아했던 도서 숨결이 바람될 때에 저자 폴 칼라니티가 남긴 말이다. 

 

내가 그의 책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는 몰입 그자체였다.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의 신경외과의사인 그가 폐암 4기를 진단받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을 때 집필활동을 이어나갔고 수술방에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그는 계속해서 본인의 기술을 발전시켰고 몰입했다.

 

이 책은 집필하던 중 그는 사망하게 되어, 결국 그의 아내가 마무리했던 폴 칼라니티의 삶이 담겨있고, 삶의 최전방의 동행자가 마무리한 가슴이 벅찬 책이었다.

 

 

이 책을 좋아했던 이유는, 폴 칼라니티는 진정한 "성인(成人)"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삶의 끝이 보이는 순간조차 그의 삶이 더 가치있어지는 무언가를 해왔기에, 어쩌면 살아갈 목적을 만들어갔기에 나는 그가 성인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삶에 있어서 그를 만들어내고 그가 살게하는 무언가는 신경외과 의사로서의 테크니컬한 기술, 완벽한 집도하에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수술들, 그에게 있어서 힘이 되는 환자들의 소식들이 어쩌면 그를 계속 살게 했던 것 같다. 

 

그에게 있어서 몰입은 그가 성인이 되도록 인도했던 무언가 아닐까? 그에게 있어서 내재적 동기는 무엇일지 너무 궁금했고, 진정한 내재적 동기없이 그저 대학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있어서 충격이었고 벅찬 책이었다.

 

그냥 이번 장은 폴 칼라니티가 이 책을 읽었나 싶을 정도로 비슷한 장이었고 그 어느 것보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내게 스며들었으면 하는 장이었다.

 

 

 

목적, 의미 있는 삶

 

이어서 폴 칼라니티의 이야기를 조금 마무리해서 목적에 관해서 남겨보려고 한다.

 

폴 칼라니티는 환자를 치료하고 자신의 기술을 향상시키는데 큰 만족을 느꼈으며 그에게는 이것이 "내재적 동기" 즉 목적이었다. 그런데 만약 폴 칼라니티가, 그런 내재적 동기가 목적이 아니라 그 목적이 "돈"이었다면 그의 마지막이 어떻게 다를까? 

 

폴 칼라니티 이야기는 다니엘 핑크가 말하는 내재적 동기, 우리가 목적과 의미있는 삶을 찾는데 있어서 바로 이 내재적 동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왜 일해야하는지, 그리고 노력해야하는지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알려줬고 내재적 동기, 자기주도적인 학습과 성장, 보상과 외부적 동기에 의존하는 것을 지양하라고 하였다. 

 

 

 

 

부모와 교육자를 위한 I유형

 

그냥 이 책을 읽다 문득 이 부분이 눈에 이 챕터가 들어왔다. 읽다보니 한국식 교육의 아쉬운 점이 있었다.

 

몬테소리라는 교육법이 유행했을 때,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기린 책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인 목적성을 자극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길만한 자극을 주었었다. 맞벌이셨음에도 유년기 나에게 좋은거 해주려고 애쓰셨다.

 

그런데 이런 교육법, 당근과 채찍이 아닌 드라이브를 자극하는 교육은 유년기 이후, 초/중/고등학교 시기에 접어들면서 내인생에 거의 자취를 감췄다.

 

나는 학창시절 수학을 꽤 잘했다.

전교 1등을 몇 번 받아봤고 수능도 최소한 2등급은 나오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유형, 정해진 패턴에 맞게 인내심을 기르며 싫어하는 공부를 이겨내야 좋은 결과를 받아올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늘 불안함에 '그 어느 것도 다른 사람을 통해 얻어낸 것이 하나도 없고 내 스스로가 배워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멘토를 찾아해맸다. 혼자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스스로 하고싶고 필요한 부분을 내가 찾아나가면서 공부하고 싶었고 근처에 그런 친구들도 많았는데 결국에는 불안해서 멘토를 찾고 그닥 좋지 않은 선택을 했었다.

 

그러다 좋은 영어선생님을 만나고 내게 조언을 해주셔 결국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내 통제, 내 자율로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전보다 고3때 수학을 더 좋아하게 되었었다. 

 

그당시에는 단순히 이게 "학원문제"라고 생각을 했는데 뒤늦게 생각해보면 한국 교육의 특징때문이었다고도 생각하기도 한다.

자율성을 통제하며 인내심을 기르는 것이 초/중/고등학교에서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한 전략이었다.

 

 

 

물론 그런 것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율성"이라는 것을 태어나서 한 번도... 인턴을 오기 전까지 단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서 너무 충격적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든 뇌과학자든... 모두가 자율성을 중요하다고 외치는데 왜 그간 나는 이게 중요했던건지, 그냥 자율성은 좋은 성취를 위한 방해물이라고만 생각했다. 모든 멋진 퍼포먼스는 완벽한 통제 하에서, 완전한 인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어왔는데 이렇게 내가 믿어오기까지 과연 나 혼자만의 사상으로 이렇게 온걸까?

 

물론 아닌 친구들도 있겠지만, 그냥 이렇게 생각할 때까지 아무도 나에게 틀렸다고 말해주지 않아서 새삼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졌다. 그런데 그때 누가 말해줬더라하더라도 결국엔 시스템 구조상 다시 나는 불안해하며 인내력를 키우는데 노력했겠지?

 

마음이 조금 아팠고 앞으로 언젠가 아이를 낳거나 힘들하는 친구가 있다면 능력은 안되겠지만 내가 많이 도와주고 싶다.